'새로운 백조의 돌' 이라는 뜻을 가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바이에른 국왕인 루트비히 2세가 권력과 재력을 총동원해서 만든 성으로써 디즈니랜드에 나오는 성의 모델이기도 하다.
위 사진은 2011년 여름.. 유럽출장 중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짤쯔부르크로 넘어가기전에 들렀었다.. 루드비히 2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명은 Schwangau 지역이고.. 뮌헨에서 버스로 새벽같이 출발했던 기억이 난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이런 장면을 찍으려면 Marien Brucke(마리엔브뤼케) 라는 절벽과 절벽을 이어놓은 아찔한 다리의 중앙에 서서 찍어야 한다. 성에 도착하는 버스행렬과 쏟아져나오는 관광객들이 표를 끊고 성을 먼저 관광하는 사이.. 나는 잽싸게 다리를 먼저 찾았다.. 정말 운 좋게.. 다리 중앙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어댔던 설레임이 지금도 아련히 느껴진다.
※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루드비히 2세와 노이슈반슈타인성에 관한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좀 더 자세히 적어봤습니다.
출생-죽음 : 1845-1886 / 재위기간 : 1864-1886 / 지역 : 독일 남부 / 왕조 : 바이에른 왕조
아돌프 히틀러는 화가가 되려다가 독재자가 되었다. 그는 거대한 건축물을 좋아했고, 특히 바이에른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좋아해 자기가 죽으면 성을 폭파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의 월트 디즈니는 만화 지망생이었으며, 고생 끝게 에니메이션으로 크게 성공했다. 그는 애국심이 투철했는데, 공산주의자를 일제 검거할 때는 영화계에서는 1-2위를 다툴 만큼(로널드 레이건과 1,2위를 다툴 정도라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 '암흑의 제왕'이라 불렸다. 그는 거대한 유원지를 만들어 그 안에 신데렐라 성을 만들었다. 이 성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다.
20세기 거물 두 사람에게 이토록 사랑을 받은 성을 만든 이가 바로 19세기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왕 루트비히 2세였다. 19세기 독일에는 무수한 소국들이 난립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선두를 다투는 강국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세번째가 남 바이에른이었다.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는 어릴때 부터 집짓기를 좋아했고 소년기에는 중세 서사시에 빠져 열 다섯살때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그는 열여덞살에 왕이 되었는데, 국민들은 모두 젊고 아름다운 왕에게 갈채를 보냈었다. 그런데 왕이 내린 첫번째 명령은 어이없게도 바그너를 찾아오라 였다. 바그너는 막대한 빛을 지고 유럽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왕은 그의 빛을 모두 갚아주고 호화로운 건물까지 지어주어 그의 작곡 활동을 원조했다.
국고를 낭비한다는 비난을 듣자 루트비히는 수도를 떠나 산속의 성으로 들어가버렸다 -_-; 그는 음악과 축성에 빠져 지냈는데, 노이슈반슈타인 성, 린다호프 성, 헬렌킴제성(*여긴 베르사이유궁전에 갔다가 감명을 받아 축소퐌으로 만든 성인데 조만간 사진 올려드릴께요~) 등을 만들었다.
물론 시대는 중화기 크루프 시대였고 산성은 요새로서의 의미가 없어졌으므로, 순수한 취미활동에서였다. 그의 두가지 취미 때문에 왕실은 엄청난 적자를 냈다. 대독일주의 소독일주의등은 안중에도 없이 취미에 열을 올리던 그가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갑자기 정치적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에 남독일 국가들은 프로이센의 지배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싸워 독일인들의 국민 의식을 고무시키고 남독일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작전은 성공하여 바이에른에서도 애국심이 높아졌고 마침내 프로이센의 동맹국으로 참전하게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루트비히가 프로이센 왕 빌헬름에게 제관을 준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루트비히는 마지못해 제위의 추천인이 되었으나 결국 대관식에는 심한 치통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왕은 이런 상황을 견딜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 더욱 정치에 무관심해져 낮에는 잠자고 밤이 되면 금으로 장식된 마차로 성 주변을 달렸다 -_-;;; 타식과 영양 불균형으로 그는 비대해지고 치아도 빠졌으며 눈에는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광기가 서려있었다. 마침내 장관들은 왕을 감금했는데, 다음날 익사체로 호수에서 발견되었다. 왕은 생전에 성을 구경거리로 삼고 싶지 않으니 자기가 죽으면 성을 폭파하라고 말했었다. 성은 물론 구경거리에 최적이었으므로, 폭파되지 않았고 현재도 바이에른의 관광 자원이 되고 있다. 데카르가 '미치광이왕 루트비히'에서 언급한 대로 바이에른을 파산직전 까지 몰았던 이 성이 이제는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루트비히가 벌였던 기행도 후세 사람들에게는 흥미를 끌거 그 자체가 관광 자원이 되었다. 이상..
인용출처 : 판타지 라이브러리 제왕열기(서양편)
다음엔.. 루드비히 2세와 바그너, 바그너와 니이체.. 19세기 중심에서 논란이 많았던 얘기들을 모아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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